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시 이쿠조 (문단 편집) == 소개 == '''요시 이쿠조''' (吉 幾三)[* よし、行くぞ!(좋아 간다!) 라는 뜻의 말과 발음이 같은 [[언어유희]]적 성격을 지닌 예명이다.]는 [[일본]]의 [[엔카]] 가수 겸 작사 작곡가이다. 본명은 카마타 요시히토(鎌田 善人). [[1952년]] [[11월 11일]]생. [[아오모리현]] 출신. 혈액형은 [[B형]], 신장 178cm, 체중 70kg. 1952년 아오모리현 고쇼와가라시의 민요가수였던 카마다 이나이치의 막내로 태어났다.[* 아버지는 당시 일본 [[쇼와 덴노|천황]]의 앞에서 민요를 선보일 정도의 민요 명수이며 그에 대해 요시 이쿠조는 '아버지는 넘을 수 없다.'고 말하고 있다.] 1972년 야마오카 에이지라는 예명으로 아이돌로 데뷔하였으나 그리 성공하지 못하자, 1977년 예명을 지금의 요시 이쿠조로 개명하여 포크송 노선으로 방향을 바꾼 후 발매한 '나는 절대! 프레슬리'라는 곡이 히트를 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. 이후 1984년 발표곡인 '[[俺ら東京さ行ぐだ]] (나 도쿄에 갈란다)'가 대히트를 기록. 1986년부터 2001년까지 [[NHK]] [[홍백가합전]]에 16년 연속으로 출연한다. 다만, 최대 히트곡인 俺ら東京さ行ぐだ가 본인의 경험을 소재로 한 곡이라고 이야기 한 탓에 고향인 아오모리현 카나기마치[* 사실 거의 혼슈 최북단에 붙어있는 동네이기는 하다. 현재는 고쇼가와라(五所川原) 시에 합병되었는데, 합병 전인 2005년 기준 인구는 10,557명. 그래도 하루에 몇 편 없지만 [[카나기역]]에 철도도 들어오던 곳으로 [[다자이 오사무]]의 고향이기도 하다.]에서 '우리 동네는 그렇게 촌구석이 아니다!'라는 항의전화에 시달린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.[* 사실 그럴만도 한게 이 곡의 가사를 보면 전기도 가스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하루에 한대만 온다고 하는 등, 완전 깡촌이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.] [[근육소녀대]]도 이 노래를 샘플링해서 '소울 콧쿠리상(분신사바)'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. 술을 매우 좋아하며 1992년에는 술에 취해 [[삿포로 TV]] 지역방송에서 음부를 노출시키는 등의 주사에 관련된 트러블이 많았다. [[시모네타]]를 매우 좋아하며 방송에서 자주 시전하곤 한다. [[한강]]이라는 곡을 만들었으며 이 때문에 인터넷 극우들에게 [[재일]]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으나, 한강을 작곡한 이유가 일본의 스낵바를 자주 가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 여자들을 보고 떠올라 작곡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. 또한 후배들을 데리고 남자끼리 한국에 기생관광을 목적으로 간 적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. 장녀도 KU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 중이다. [[표절]]에 대한 [[흑역사]]가 있는데, 자신의 [[히트곡]] 중 하나인 '설국(雪國)'(1986)이라는 노래가 [[조용필]]의 창밖의 여자(1979)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었다. 다만, 어찌저찌 그냥 묻혀버린 모양. 사족으로 [[게게게의 키타로]]의 3기 오프닝과 엔딩곡을 부르기도 했다. [[조용필]]의 명곡으로 유명한 [[돌아와요 부산항에]]를 커버하기도 했다.[[https://youtu.be/Ker1Znm-68E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